리나네기 2021. 9. 30. 09:11
두 잔느

그건 현실감을 잃게 하는 광경이었다
괴물로 영락되어도 사라지지 않는 고귀한 행동과, 이미 그 존재에 스며든 피냄새를 겸비한 남녀.
남자인지 여자인지 판별하기 어려운 아름다운 용모에, 레이피어를 휴대한 기사.
제사복으로 매력적인 몸을 감싼, 지팡이를 든 성녀.
그리고, 광기로 눈동자가 탁해진 그들을 이끄는, 검과 깃발을 들고 있는 검은 소녀.
그녀야말로, 현 상황을 이형으로 바꾸고 있는 존재다.

저쪽은 은과 흑. 이쪽은 금과 백.
피부색이 하얀 색을 넘어서 병에 걸린거 아니냐 생각해 버릴 정도로 창백한 피부나, 치켜든 기의 문장 등, 세세한 차이를 찾는건 쉬웠지만.
얼굴의 외형이나 몸매, 그게 『그 사람』이라 인식시키는 대략적인 요소가 일치한다는,
설명하기 어려운 그 감각이, 같은 얼굴로 마주보는 두 소녀가, 원래는 동일한 인간이라는 것을 강제로 납득하게 만들었다.
이 상황이 꿈도 환상도 착각도 아니라, 두 동일인물이 눈 앞에, 확실히 둘 다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된 때는 바로 찾아왔다.
멍하니 서 있는 하얀 잔느를, 차갑게 바라보던 검은 잔느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가며, 초승달 같은 차디찬 미소를 지었기에.

「……이게, 무슨.
설마, 설마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이야.
저기, 부탁해. 누가 내 머리에 물좀 끼얹어 줘.
너무해. 너무하잖아. 정말 이상해질 것 같아.
그 정도 하지 않으면, 너무 웃겨서 죽어버릴 것 같다고!」

「당신은… 당신은, 누구죠!?」


자애롭던 미소를 모멸하는 조소로 바꾸고, 또 다른 자신의 왜소함을, 저런 계집에게 매달려야만 했던 프랑스라는 나라의 꼴불견을, 계속해서 비웃는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두고 잔느는 저도 모르게, 알고 있었을텐데, 각오하고 있었을텐데, 결국 참지 못하고 그렇게 소리질러버렸다.
저게 자신이라니. 저게 자신 어딘가에 있었을지도 모른다니, 아무래도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으니까.
그런 냉정함을 잃어버리려던 잔느를 억누르고, 대신 앞으로 나온 사람이 있었다.

「링크 씨……」

「물러 서, 잔느」

상처입고 초췌해진 성녀를 감싸고, 강대한 적과 상대하는 아름다운 소년기사.
의도해서 만들어진듯한, 매우 훌륭한 구도의 이 광경은, 미쳐버린 서번트들의 금선을 자극했다.
기사나 성녀는 무의식중에 감탄의 한숨을 내쉬고, 흡혈귀들은 극상의 사냥감의 예감에 침을 삼킨다.
갑작스러운 고조를 참는 부하들과는 다르게, 모처럼 즐겁게 조소하고 있던 찰나 단숨에 그럴 겨를이 아니게 된 검은 잔느는, 짜증난다는 듯 혀를 찼다.

「하핫. 그게 뭐야?
역시, 아름다운 성녀님은 다르시네요~. 아무 말도 없이 지켜주는 기사님이, 입만 다물고 있으면 다가오다니」

「물러서 주세요, 링크 씨. 이건 제 문제에요!!」

「당사자니까 안 되는거야. 냉정한 판단과 대응을 할 수 없게 되니까.
말하고 싶은건 지껄이라고 해. 뭐든 좋으니 그저 업신여기고 싶어하는 것 뿐이니까」

완전 무시. 그것도 매우 자연스럽게 『그 정도』 취급당한 검은 잔느의 이마에 힘찬 핏줄이 솟구쳤다는걸, 마슈의 방패 뒤에서 필사적으로 상황을 엿보던 리츠카는 알아차려버렸다.
빠득. 악문 이를 갈며, 깃대를 잡던 손이 그대로 짓눌러버릴 정도로 떨리면서, 그것만으로도 사람 하나 쏘아 죽일듯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검은 잔느.
그런 그녀에게 내심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둘째치고, 무심코 시선을 향한다거나 가득찬 살기에 당황하는 짓은 전혀 하지 않는다.
비록 겉모습 뿐이라고 해도, 무관심을 주장하는 그 모습은, 자기도 모를 자살지원자라고 의심해버릴 정도로, 효율적이면서도 정확하게 마녀의 정신을 부추기고 있었다.

「그럼 다시…… 처음 보는거지. 잔 다르크.
난, 링크라고 불러줘」

「링크…… 그 대단한 전설의, 훌륭하신 용사님의 이름이잖아.
그런 이름을 일부러 자칭하다니, 자신의 얼굴과 실력에 상당히 자신이 있는건지, 그렇지 않으면 그저 바보인건지.
그 여유로워보이는 표정. 정말 짜증나」

「그러면 들려주겠어?
넌 도대체 무슨 이유로, 무엇을 위해, 이런 악취미적인 기분전환(憂さ晴らし)에 즐거워 하는건지」

「기분ㅈ…… 내 복수가 기분전환이라고!?」

「그게 아니면 뭔데?
악의로 배반한 자, 폄훼한 자…… 명확한 대상에게만 그 증오를 향하고 끝냈다면 몰라도.
관계도, 안면도 없는 자들까지 무차별하게, 감정에 맡겨서 역정을 내는 시점에서, 네 복수에는 정당성은 없어.
규모가 너무 커서 큰 일로 보일 뿐인, 그저 애들 화풀이라고」

「이자식!!」

처음부터 참을 생각 따윈 없던 검은 잔느의 격정이, 최후의 한마디로 폭발해버렸다.
방대한 마력이 불꽃으로 무차별하게 흩뿌려지고, 머나먼 칼데아의 관제실까지 피해를 끼치면서, 충동대로 소리를 질렀다.


「버서크 랜서, 버서크 어새신. 그 녀석을 치워버려!!
별거 아닌 성녀 따윈 언제든 처리할 수 있어. 일단은 거기 불쾌하기 짝이 없는 가짜 용사를 처참하게 지워버려!!」

「괜찮군.
비록 이름뿐이라도 용사를 사냥한다니, 괴물의 이름에 아깝지 않으니」

「난 기본적으로, 남자는 안중에도 없지만…… 뭐, 좋아. 저렇게 아름다운 젊은이는 처녀라도 그렇게 보이지는 않아.
이 때 남자인지 아닌지는 상관 없어. 살을 가르고 피를 받도록 하죠」

《위험해 위험해 정말 화났어. 왠지 굉장한 서번트를 둘이나 부추겼어!!
링크 군, 냉정해지지 못한다는 이유로 잔느를 물러서게 한 네가 뭘 하는거야!?》

「난 냉정하고, 확실하게 노림수대로인걸.
적의 강함, 싸우는 방법, 정체…… 그것들을 가장 정확하고 확실하게 조사하는 방법은, 실제로 싸워보는게 제일이니까.
적어도 이 곳에서, 모습만은 잔느를 닮은 저 얼굴에, 적어도 한발은 때려박아주겠어

얼핏 보기에는 침착해 보이듯 생각되지만, 이상한 박력이 담겨진 그 소리에
자신을 사냥감으로 바라보는 두 서번트는 어쨌든, 검은 잔느만 똑바로 바라보는 그 시선에 담겨진, 조용하게 끓어오르는 격정에.
어떤 참상을 앞둬도 냉정하고, 침착하게 자신들을 이끌어주던 것 처럼 보이던 그가, 실은 남 몰래 화가 나 있었다는 것을, 리츠카들은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