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나네기 2021. 12. 5. 16:08
용기 있는 자
동료들과 떨어져, 이 요새로 홀로 돌아오고,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 지핀 모닥불은 이미 잿더미가 되고, 얼마 안 되는 따스함도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다.
조용히 눈을 감고, 잠을 자듯 보이는 링크의 무방비한 등을 향해, 등 뒤의 어둠에서 소리도 없이, 칼날처럼 날카롭게 뻗은 붉고 불길한 손톱이 향해진다.
심장을 노리고 빠르게 내질러진 그것을, 링크는 돌아보지도 않고 칼집에 든 검으로 쳐냈다.


「………?!」

「왔군」


링크가 그걸 『적습』이라 판단한 것은, 집중하고, 의식을 예리하게 갈고 닦은 도중 부자연스럽게 다가온 것을 순간적으로 뿌리친 후. 즉, 공격을 막은 직후였다.
돌아본 시야 속, 가면을 쓴 이형이 순식간에 사라진 어둠을 향해 검을 들어올린 링크의 등으로, 초격과는 다른 무기가 휘둘러졌다.
순간적으로 반응하여 뛰어서 피한 링크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칠흑의 갑주로 전신을 가린 기사의 모습.
소리로 나오지 않는 외침과 함께, 이성이 느껴지지 않는 행동에 걸맞지 않는 섬세한 기술로서 휘둘러지는 칼날에서, 링크는 요새의 성벽으로 달라붙어 피했다.
격전에서 받은 타격을 보수도 하지 못하고 방치되어 이곳저곳이 무너진, 그래서 발판이나 손잡을 구석이 부족하지 않은 성벽을, 순식간이라 해도 좋을 정도의 스피드와 가벼운 동작으로 올라온 링크.
갑작스러운 습격에서 도망쳤음에도, 눈 앞에 펼쳐진 것은 푸른 하늘이 아니었다.

퇴로는 커녕, 시야 전체를 가로막는 그 그림자는, 와이번 따위는 결국 하등종이라는 사실을 존재만으로 인식시키는 칠흑의 거룡.
그 등에는, 어리석은 자를 비웃으며, 깔보는 시선과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용의 마녀가 있었다.
나아갈 길을 가로막힌 링크의 오른쪽에, 본 적 있는 얼굴이. 남성이라고도 여성이라고도 판단하기 힘든 미모의 검사가 가로막는다.
그걸 인식하고 순간적으로 돌아본 좌측에는, 불쾌하다는 듯 표정을 찡그리는 블라드 3세가.
등 뒤에는 자신들의 습격을 피한 링크를 쫓아 온 가면의 청년과 흑갑주의 기사가 퇴로를 막는다.
사룡 파프니르와 서번트들의 포위망이 완성되는걸 지켜본 검은 잔느는, 공포와 경계심이 반전되어 환희감과 모멸감이 솟구치는걸 느끼고 있었다.


「좋은걸, 정말 훌륭한 광경이야.
기분은 어떠실까, 용사님?
강함에 자만하고, 자신이라면 괜찮다고 뻐기다가, 동료로부터 홀로 떨어져버린건 모두 당신의 자업자득.
그 결과 희롱당해 죽게 될 무념을, 굴욕을, 소리 높여 질러보지 않겠어?」


이 용의 마녀를 두려워하지 않던 자를, 그 때의 자기 자신을 목 졸라 죽이고 싶어질 정도의 굴욕을 준 자를, 그 이상의 굴욕과 절망을 주며 때려잡는다.
그런 고양감을 느끼며, 절체절명의 소년을 더욱 몰아붙이려던 검은 잔느였으나, 그 기쁨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뭐여, 그 얼굴은.
너 제정신? 이 상황 이해하고 있는거야?!」


거대한 사룡과, 그걸 손발처럼 다루는 용의 마녀. 게다가 복수의 서번트에게, 그저 홀로 둘러쌓여,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것만으로 모든 소망을 잃고, 쓰러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임에도, 링크는 웃고 있었다.
당당히 등을 펴고, 눈 앞에 펼쳐진 절망의 광경을 눈을 돌리지 않고 똑바로 응시하는, 그야말로 『영웅』 같은 상태로.


「그 표정 그만 둬…… 포기하라고, 절망하라고!!
뭐야 그거, 왜 내가 구석에 몰린 기분이 드는거냐고!!」


매우 기분 좋았는데 물은 커녕 얼음이 쏟아진듯 반전된 불쾌감 속에서 검은 잔느가 지른 노성이, 불꽃과 함께 흩뿌려진다.
생각대로 되지 않은 것에 초조, 발작하며 아우성거리는 그 모습은 확실히, 마리가 눈치채고 지적한듯한 어린아이의 행동 그 자체였다.


「절망하지 않는 이유, 인가.
그야 당연히. 생각한 대로. 노림수대로 잘 됐으니까겠지」

「……무슨 말을 하는거야?」

「전력강화를 마친 네가 가장 먼저 습격해오는건, 내 쪽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용의 마녀의 긍지를 짓밟은 나를 배제하고, 자부심을 되찾지 않고서야 너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해.
용살자를, 지크프리트를 만전으로 만드는 것에 위협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한들, 양보하지 못할 우선사항이야.
그리고 너는, 실제로 이렇게, 나 한명만을 위해 전력을 집중시켰지.
지금부터 분산시켰다고 해도, 리츠카 들이. 지크프리트의 저주를 풀 수 있는 성인이나, 다른 아군이 되어 줄 서번트를 찾아내는게 빠르겠지」

「너 설마, 스스로 미끼가 되었다는거야?!」


링크의 말과 미소의 의미를, 현 상황을 파악한 순간, 검은 잔느의 분노와 초조는 전례없는 규모로 폭발했다.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이 간파되어 있었다. 낚였다. 이용되었다.
그런, 굴욕을 풀기는 커녕 오히려 설상가상으로 심한 굴욕을 받은 사실에, 타격을 받았다는건 확실하지만,
검은 잔느의 진정한 기폭제는, 그것과는 다른 부분이었다.


「헌신? 자기희생? 동료를 위해서라면 자기가 어떻게 되든 상관 없다고?
멍텅구리 아냐?!
그 성녀님의 말로를, 몸을 바쳤는데도 배신당할 뿐이라는걸 알면서, 왜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는데!!」

「소중하기 떄문이야. 이 몸을 걸어도 상관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네 부모는, 네게 증오와 복수를 새긴 녀석은, 그런걸 가르쳐주지 않은걸까?」

「닥쳐닥쳐닥쳐!!
이제 됐어, 네 얼굴은 이제 보고 싶지도 않아, 그 목소리도 듣기 싫어!!
바라는 대로, 그 시시한 자기희생의 헌신이라는걸, 꼴불견스럽게 이뤄주겠어!!
그 녀석을 학살해, 버서크 서번트들!!」


검은 잔느의 말을 듣고 가장 먼저 뛰쳐나온건, 얼굴의 반이 가면으로 가려져서, 나이프보다 날카로운 양 손의 손톱을 들어올린 광기의 서번트, 팬텀 오브 디 오페라였다.
링크가 카밀라를 상대로 가차없이 펼친, 처참한 광경의 인상이 머리속에 뿌리깊게 늘어붙은 세이버와 블라드 3세는, 그저 한 순간의 주저함으로 명확하게 출발이 늦어졌다.
팬텀처럼 링크를 모르고, 같은 광기를 품고 있었을 흑기사…… 랜슬롯 조차 그 발을 멈춰버린건, 미쳐버렸기에, 오히려 기사로서의 본능이 예리해진 덕분이겠지.

인류사에 이름과 존재를 새긴 괴물이며, 수많은 생명을 빼앗은 살인귀면서도, 역전의 전사가 아니었던 팬텀은, 눈 앞의 소년의 위협을 파악하지 못한 채, 명령받은 대로 단독으로 달려들……기 전에, 일동은 보았다.
내질러진 손톱과 검신을 이용, 힘이 아니라 기술로 받아치고, 『텅 비어 있다』가 아니라 『텅 비게 만든』 품으로 물 흐르듯 뛰어드는 역전의 기술을.
동년배와 비교해도 몸집이 작고, 가녀린 편일 몸에 순간적으로 넘쳐, 근육과 뼈를 삐걱거리게 만들며, 발을 디딘 석조벽돌에 금이 가게 만든 강력함을.
이야기의 등장인물이라는, 애당초 애매한 존재이며, 전투에 뛰어난 일화가 있던 것도 아니며, 결코 고위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확실히 서번트였던 자의, 에테르체로 구성된 임시의 생명이, 단 한 순간, 그저 일격으로 박살난 광경이.
거기 있던 사람들의 눈과 의식에 결코 잊을 수 없는 선명함으로 아로새겨졌다.



「조금 전의 발언, 한가지만 정정시켜두겠어」


이미 반 정도 빛으로 변해 소멸하려는 팬텀의 몸을, 그 핵을 궤뚫은 검을, 마치 피라도 털어내듯 흔들어, 남아있는 에테르의 잔재를 흐트리며,
돌아본 링크의, 뜨겁게도, 차갑게도 여겨지는 눈동자에 노려봐져, 정체 모른 공포와 오한에 시달리면서,
그래도 필사적으로, 시선만은 돌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던 검은 잔느에게, 링크는 조금도 인정사정 없이 선언했다.


「시시한 헌신이라던가, 자기희생이라던가, 마치 내가 죽기를 각오하고 있다는 듯한 말을 했는데.
공교롭지만, 내게 그럴 생각은 조금도 없어」


검은 잔느의 적의와 경계를 한 몸에 모았을 때 부터, 이 전개를 고려하고 있었다.
습격을 경계하면서, 겨우 합류한 지크프리트가 저주에 시달리고 있어서, 새로운 전력을 위해서라면 서번트를 더 찾아야 한다는 것이 판명되고,
다음 방해는 역시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미끼 작전을 결의했다.
어제 밤의 탐색으로, 칼집 달린 적당히 양질인 검을 찾아내지 못했더라도.
피폐해질 때 까지, 본능이 드러날 때 까지 싸우는 것이 서번트로서의 힘을 각성하는 요령이라 판명되지 못했더라도,
자신은 결행을 주저하지 않았을테고, 살아서 다시, 리츠카와 마슈들을 만나는 것을 눈꼽만큼도 포기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자신의 결의가 어쨌든, 검은 질이 제법 좋다고는 하지만 서번트 상대의 연전을 버티는 것은 어렵고, 싸움 도중에서 무언가의 힘을 얻어내지 못한다면 거기서 끝나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도 거듭 알고 있었다.
알고 있으면서도 링크는 주저하지 않았다. 왜냐면 포기하지 않았으니까.
이 상황에서, 그 멤버 중에서, 미끼 역할을 완수하며 살아남을 수 있다면, 그건 자신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다.
여기서 지면 목숨은 없다라던가, 세계가 끝나버린다던가라니. 그런 것 쯤은.


「항상 그랬으니까.
게다가…… 제멋대로 행동해서 걱정을 끼친 걸, 리츠카 들에게 제대로 사과해야 하니까」


수많은 사람들을, 시대를, 세계를, 몇번이고 구해온 긍지와 자신감을, 은밀하게 가슴에 품으며,
검을 쥐고 늠름하게 서 있는 소년 검사에게, 영웅들은 미쳐있는 사고로, 그래도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선명하게, 『용사』의 모습을 겹쳐보고 있었다.